블로그 자체를 안하다 보니, 예전부터 '얘기 거리가 있을 때마다 잘 써야지!' 라고 다짐을 했으면서도 잘 안쓰게 되어 바로 밑의 포스트가 4월의 아퀼라 지진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튼, 전 포스트에서 4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쓰려는 이야기 역시 아퀼라의 이야기지만 심각하고도 안타까운 지진의 이야기는 아니고, 지진 뒤에 내가 방문했던, 지금은 그래도 이탈리아 전국의 사람들의 작지만 소중한 도움을 받아가며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는, 그런 희망적인 아퀼라의 이야기이다.
이번 여행은 작년 여행과 마찬가지로 국제 봉사활동을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작년에는 Abruzzo 지역 (아퀼라가 있는 지역)의 아주 조그만 타운, 사실 타운이라 그러기에도 너무 조그만, Scafa라는 마을이라면 꽤나 적당할만한 곳에 갔었다. 덕분에 지진 전의 아름답고 건재했던 아퀼라도 보았고, 지진의 피해를 받지 않았던 중세도시 Sulmona도 구경했었다. 너무 즐겁고 사람들도 너무 좋았던 캠프였던지라 작년에 엉엉 울며 캠프를 떠났고, 덕분에 올해도 이탈리아에서 봉사활동을 해야지 하고 떠난 것이다. 올해의 캠프 역시나 너무 즐거웠다. 작년의 따뜻하고 즐거웠던 것과는 조금 다른, 미친짓도 많이 하고 웃기도 많이 웃은 그런 종류의 즐거움이었지만.
아무튼, 이탈리아에 7월 1일 도착하여 로마에서 3일을 혼자 여행한 뒤, 나폴리 근처의 Castellammare 라는 꽤 큰 도시에서 3주의 봉사활동을 했다. 전세계 (사실 한국인 두명을 빼면 전 유럽) 에서 온 여자애들 만으로 15명에, 코디네이터 한명만 남자였기에, 15명의 다른 여자애들과 함께 정말로 황당하고 미친짓도 많이하며 웃으면서 놀았던 즐거운 캠프였다. 그리고 캠프가 끝나고 토리노에서 SERVAS 회원의 집에 머물며 구경도 하고, 그 가족과도 어울리며 즐겁게 4일을 보낸 뒤에 작년에 봉사활동을 했던 곳을 찾아갔다. 작년의 코디네이터 부부 (로꼬와 로잔나)가 올해도 역시 있었는데, 어쩜 그렇게 반갑게 반겨 줬던지, 내가 스카파까지 가겠다는 데도, 거의 40분 정도 되는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역까지 차를 타고 일부러 데릴러 와줬다. 나도 너무 반가웠던 지라, 기차안에 앉아서 기차가 떠나길 기다리다 로코가 나를 찾으러 플랫폼까지 올라온 걸 보고, 나도모르게 사람들이 다 쳐다보도록 시끄러운 소리로 '오!!! 로꼬!!!!' 를 외치고 창문을 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민폐인짓을 한 셈이지만, 다행이도 밝은 이딸리아니는 그런 나를 보고 웃어주고 말았다.
작년에 찍었던 건재했을 때의 아름다운 이딸리아. 맑은 하늘이며, 멀리보이는 바다며, 산턱의 오래된 마을들이며. 한창이었던 붉은 양귀비 꽃들까지. 굉장히 아름다웠다. 다행이도 시골풍경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아퀼라만이 유독 심하게 망가졌던 것이다.
그리곤, 원래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캠프에 섞여서 놀 생각이었으나... 저녁에 힘든 몸을 이끌고 도착해서 보니, 진행중 캠프는 18살 이하만 오는 캠프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애들이 대부분 15~17살의 아이들이었다. 섞일라고 노력한다면 어울릴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왠지 피곤할지도 모르겠구나...'라고 느끼고 있었던 찰나에 로잔나(캠프 코디네이터중 여자)는 라퀼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기에 나는 그곳에 더 맞겠다라고 느끼고 로잔나를 도착한 날 다음날부터 따라 나섰다.
안그래도 토리노에서 아브루쪼까지 7시간도 넘게 기차를 타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도착해, 그날저녁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1시가 넘어서야 겨우 침대에 누웠는데,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7시에 출발해야 했으니. 피곤함이 말이 아니었다. 스카파에서 라퀼라까지 그래도 적어도 40분 정도는 걸렸기에, 다행이도 차에서는 조금 잘 수 있었다. 그렇게 40분동안 구불구불한 산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라퀼라의 기차역이었다. 그것도 중앙역. 지진으로 망가져 지금은 쓰지 않는 역을 집을 잃은 사람들의 캠프로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일어나라는 말에, 비몽사몽으로 차에서 내려 아침으로 카페와 빵을 먹었는데 그 날이 토요일이었던지라 꽤나 재밌는 광경을 보았다. 그날 날짜가 8월 1일으로 수페르아날로또가 그때만해도 1000억(원)이 훨씬 넘는 상금이 모아져 있었다, 지금은 한 2400억정도라지만... 아무튼, 그래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로또를 사고 있었는데, 다들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면서도 서로 '번호 불러! 중요하단말이야!' 같은 식으로 소리를 지르며 다같이 서로의 번호를 골라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23!' 이런식으로 번호를 부르는 소리며, 커피며, 맛있는 빵이며.. 여러 요소덕분에 잠이 확 달아났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야간기차에 머물고 있었다. 텐트 대신이었던 것이다. 아아... 얼마나 슬픈 광경이었던가. 하지만 다행이도 사람들은 더욱 활발했다. 내가 해야했던 일은 요리 준비를 도와 주는 것. 벌써 사람들은 준비를 시작했고, 나역시 도왔는데, 다시한번 놀라고, 또 한번 이딸리아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머무는 야간 열차, 야간열차 한 칸에 침대가 4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야간열차 앞의 텐트. 한곳에서는 중요한 회의같은 것을 하는 곳, 한곳은 컴퓨터와 티비가 놓여져 있는 곳, 한곳은 기부받은 옷들이 가득 차 있는 텐트, 또 하나는 텐트 교회. 그리고 기차역 바로 앞에서는 캠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검사하는 봉사 경찰들의 조그만 텐트 등이 있었다.
왼쪽역시 또 다른 야간열차. 오른쪽에 보이는 텐트가 봉사자들의 텐트, 그리고 빨갛고 파란게 공중화장실. 보이지는 않지만 화장실 가까이에 컨테이너 박스 샤워실, 그리고 세탁기, 빨랫줄 등도 있다.
거의 150명 정도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왜, 보통 그런식으로 기부로 재료를 받아 봉사로 대량 준비하는 식사 정도라면 꽤나 허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거늘, 이사람들 너무 제대로다! 안티파스토(에피타이져), 프리모 (첫번째 코스), 세콘도 (두번째), 콘토르노(반찬이라지만 탄수화물 종류 빵이나 콩, 감자등) 까지 모든 코스를 세가지 다른 음식을 준비해 사람들이 고를 수 있게 만들은 것이다. 또한 디져트로 과일과, 자기들은 수돗물을 잘도 마시면서도 사람들을 주는 물은 따지도 않은 병물을 탄산수와 평범한 미네랄로 나눠 준비까지 한 것이다. 맛도 보장되어있었고, 점심이 끝나면 청소까지 깨끗이!!!!! 정말 진심으로 멋있다고 느꼈다. 정말로.
벌써 준비된 음식들과 여전히 바쁜 봉사자들. 첫번째 사진의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스테파노라는 요리사.
정말 직업도 요리사인데 직업정신도, 봉사정신도 투철했다. 정말 멋진 사람!!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곧바로 와도 흥겹고 쾌할하게도 바로 친해지고, 2년이나 배웠다지만 역시 이딸리아노가 서툰 나에게도 계속 말을 걸어주며 영어를 섞어서 쓰는 나의 느릿느릿하며 억양도 제대로가 아니었을 이딸리아노를 재밌다는 듯이 들어주었다. 대부분 이딸리아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역시 북쪽이나 중부에서 온 사람이 더 많았다. 토리노나 밀라노, 베르가모등에서 특히 많이 와 있었다. 지역도 그렇지만 종류도 역시 여럿이었는데 알피니라고 하여 이탈리아 산악지역의 군대인데, 특히 알피니가 많이 와 있었다. 알피니는 특이한 모자로 알 수 있는데 다들 나이까지 알고 나에게 '이것은 50년이나 됬다'같이 자랑 하시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튼, 너무 길으니 봉사자들과 그리고 잠깐 돌아다녔던 도시 중앙 투어 등은 다음에 써야지~